여유를 즐기고 사색하며 걷는
전주 힐링 여행
세계 최초로 도심형 국제슬로시티 인증을 받은 전주 슬로시티는 전통과 자연 생태를 보전하면서 느림의 미학을 기반으로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과 진화를 추구해 나가는 도시라는 뜻으로,
전주는 세계 최초로 까다로운 조건과 절차를 거쳐 국제슬로시티 인증을 받은 도시다.
슬로시티 전주라는 명성에 걸맞게 곳곳이 사색하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힐링 여행지로 가득하다.
복잡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진정한 느림의 미학을 알아보고 싶다면 지금 바로 전주에 방문하기를 바란다.
전주에서 즐기는 힐링 여행은 다양하다. 고즈넉한 전통의 멋과 역사를 느끼며 감상하는 여행이 될 수도 있고,
도심 속 자연에서 새소리와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보며 사색하는 여행이 될 수도 있다.
역사를 보존하며 자연생태계와 공존하는 전주에서 지친 몸과 마음에
편안한 휴식을 선물하는 힐링 여행이 되길 바라며 느리게 걷고, 사색할 수 있는 명소를 소개해 본다.
전통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전주의 상징 돌담길 따라 사색하며 즐기는 전주 한옥마을
‘한국 전통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전주는 하루에 모든 것을 다 볼 수도, 다 담을 수도 없다.
일제 강점기 저항의 상징이자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간직한 한옥마을 경기전 길.
<혼불> 속 “꽃심”으로 표현되는 전주의 정신을 가르쳐준 최명희 길.
그리고 역사의 순간마다 삶의 참모습을 보여준 선비의 정신이 스며있는 전주향교.
가장 전주다운 모습을 찾는다면 우선 발걸음을 이곳으로 옮겨야 할 것 같다. 사부작사부작 걷다 보면 전주에 취하게 될 것이다.
경기전 돌담길은 사계절 어느 때나 찾아가도 추억이 된다. 전주에 오게 되면 시간을 만들어 자주 찾은 곳이다. 아직 꽃샘추위가 오지 않은 이른 봄이다. 돌담을 넘어온 나뭇가지가 파릇파릇 물이 올랐다. 경기전 돌담길에서 만난 400년 가까이 살아온 참죽나무의 표피가 살아온 나이를 말해주고 있다. 아마 경기전 안은 조선 어진(왕의 초상화)이 모셔진 어진박물관 앞뜰 소나무와 철쭉도 봄을 준비하느라 분주할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전주 사고 실록각 앞뜰 홍매는 이미 꽃망울을 피우고, 정전 동편의 대나무숲은 봄바람에 초록빛을 부딪치며 쉴 새 없이 사각일 것이다.
봄이면 가지런하게 여기저기 핀 꽃과 경기전 돌담이 어울려서 깔끔한 멋스러움을 만난다. 여름이면 담 따라 울창한 나무숲 그늘과 그 사이사이로 비치는 하늘을 보노라면 눈이 맑아진다. 가을은 단풍 든 나무와 담장 위로 떨어져 쌓인 낙엽으로 이유 없이 가슴이 설렌다. 겨울이면 흰 눈에 덮여 소담스러운 돌담을 만나면 금방 어디서 그리운 누군가를 만날 것 같기도 하다. 혼자 돌담길을 걷다 만나는 추억은 하나인데 좋은 사람과 함께 걷다 보면 추억은 둘이 된다. 또는 여럿이 걷다 보면 추억은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평일 낮은 주말의 낮보다 한가해서 사색의 시간이 길어진다. 밤 조명이 켜지자 낮의 분주함이 가라앉는다. 돌담 넘어 고개를 내민 나무숲이 은은하고 부드럽게 하루하루 지친 어깨를 힘내라고 토닥여 주는 것 같다.
이렇듯 경기전 돌담길을 걷다 보면 계절마다, 낮이나 밤마다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사진을 찰칵찰칵 찍듯 추억이 된다.
- 위치
-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카카오맵
최명희 길을 걸으면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보게 된다. 골목길마다 다양하고 개성이 넘친다. 흙담을 따라 사부작사부작 걷노라면 담장 안에서 사는 사람들 멋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흙담을 보노라면 많은 것을 상상하게 된다. 담장에서 막 피어나는 꽃밭들을 보기도 한다. 물길 따라 산란을 위해 거슬러 가는 연어를 상상하게도 한다. 또는 고요한 호수에 바람으로 파랑이는 물결을 만나기도 한다. 최명희 길은 그래서 걷던 걸음을 자주 멈추게 된다. 전시 공간이 필요하지 않은 담장 자체가 그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라도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실해야 한다. 살고 난 뒷자리도 마찬가지라 앞에서 보면 그럴듯해도 돌아선 뒤태가 이상하게 무너진 듯 허전한 사람은, 그 인생이 미덥고 실하지 못하다.” 『혼불』 소설의 최명희 선생 글귀가 담장 위에 설치되어 있다. 또박또박 글귀를 소리 내어 따라 읽는다. 앞만 보며 달려온 삶에 물음표를 던지는 구절이다. 내 뒷모습도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그럴까. 최명희 문학관 정문보다 뒷문이 더 정답다. 뒷문을 열고 들어가면 빨간 우체통이 있다. 1년 뒤에 받아 볼 수 있는 편지를 쓸 수 있는 곳이다. 책상에 앉아 봄바람에 은은하게 울리는 처마 풍경소리를 들으며 나에게 손편지를 쓴다. 앞만 보며 달려온 내 삶을 뒤돌아보며 느리게 편지를 써보는 것이다. 그리고 1년 뒤 과거에서 거슬러 온 나에게 쓴 편지를 다시 만날 것이다.
최명희 길은 앞만 보고 걷던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다시 큰 걸음을 내딛게 만든다.
- 위치
- 전주시 완산구 최명희길 카카오맵
전주 향교를 가는 길목에 오목대에 오른다. 오목대는 고려 장군 이성계가 황산벌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돌아와 잔치를 벌인 곳이다. 오목대에 오르니 아스라이 전동성당과 경기전과 최명희 문학관과 한옥마을 은행나무 길이 다 보인다. 기와지붕 위로 봄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중간쯤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바쁘게 뛰어도, 가만히 있어도 다가오는 시간은 어차피 과거로 흘러간다. 이 시간, 이 순간이 바쁘게 살아온 나를 위한 충전으로 기지개를 켜게 한다.
선비길 골목골목은 아기자기하고 다채롭다. 이층 한옥이며 초가 체험 숙소며 벽화로 꾸며진 골목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 듯하다. 그 소리를 다 들을 수가 없다. 눈으로도 모든 것을 다 담을 수가 없다. 전주 향교 대성전과 명륜당 앞뜰에는 400여 년 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그 높이와 크기를 잴 수 없을 만큼 아름드리다. 한옥마을과 전주 향교에 은행나무 심은 뜻은 선비 정신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은행나무가 수명이 길고 벌레에 강하기에 선비들이 어떤 유혹에 굴하지 말라는 선인들의 가르침인 것이다. 가을이면 아름드리 은행나무는 더욱더 노랗게 물들 것 같다.
전주향교 정문으로 나오면 홍살문 앞으로 오목교를 만난다. 오목교를 지나면 국립무형유산원이나 남고산성으로 갈 수 있다. 나는 오목교가 건설되기 이전 전주천 징검다리를 건너본다. 전주천은 전주시의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흐르며, 전주천을 따라 남부시장까지 갈 수 있다. 천변을 따라 흐르는 것은 강물만이 아닌 것 같다. 한벽당에서 풍류를 즐기던 한옥마을 선비 정신도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따뜻한 봄날을 즐기는 수변 산책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테마정원 아중호수
아중호수는 원래 아중저수지(인교저수지)로 불렸다. 도시화로 농업용수의 공급이 줄면서 시민 휴식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아중호수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제방 아래와 동부대로변 두 곳의 주차장이 있다. 어느 곳에 자동차를 주차해도 좋다. 주차장과 산책로가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서 있는 곳에서 산책 방향을 오른쪽으로 잡든, 왼쪽으로 잡든 제자리로 돌아온다. 아중호수를 곁에 둔 지역민들은 심성이 풍요로울 것 같다. 곁에 두고 언제나 아중호수를 찾으면 일렁이는 어지러운 일상의 마음이 호수처럼 잔잔해질 것이다.
일렁이는 일상의 어지러운 마음들이 호수처럼 잔잔해진다.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순환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길은 막힘없이 이어진다. 우리네 일상도 아중호수 순환산책로처럼 막힘이 없으면 좋겠다. 산책로 따라서 오던 데크 길을 돌아보니 모두가 완만한 굴곡이다. 물 위를 걷듯 사부작사부작 산책길 걷다 확 트인 호수를 보니 달고 다닌 근심들도 하나둘 사라지는 것 같다. 산책길 따라 군데군데 놓여있는 흔들의자에 앉아본다. 의자가 흔들릴 때마다 호수 건너편 산자락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한다. 호수 위에 떠 있는 물새들이 고요하다. 하지만 물새 떼가 호수 위에 고요하게 떠 있기 위해 수없이 물갈퀴를 휘젓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우리네 일상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일상에 지친 집 나간 정신도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흔들릴 때마다 호수에 반짝이는 햇살에 눈이 부시다. 시시각각 변하는 아중호수와 어울리는 주위 풍경을 언제 어느 때나 찾아와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쉬엄쉬엄 걸어도 한 시간이면 제 자리로 돌아오는 순환산책로다.
아중호수는 아침이나 저녁 무렵에는 운동하는 사람으로 붐빈다. 가벼운 운동복 차림을 한 지역민 발걸음 보폭은 빠르다. 여행객의 발걸음 보폭은 느리다. 무엇을 입고 있느냐에 따라 지역민과 여행객을 구별할 수도 있다. 또한 발걸음 속도에 따라 구별이 되기도 한다. 일상에서 속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듯 수상데크 광장을 만난다. 산책길에는 네 곳의 수상데크 광장이 있다. 수상데크 광장의 모습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호수를 찾은 사람들 모습과도 닮았다.
이른 아침은 호수에서 피어나는 물안개와 마주할 수 있다. 아직 잠이 덜 깬 듯한 풍경 속 아중호수는 산 고개를 넘어 떠오르는 해로 인해 제 모습을 찾기 바쁘다. 이슬을 털고 벤치에 앉아서 잠시 풍경에 취해본다. 데크 광장에서 맨손 체조하거나 사색에 젖은 사람들 모두가 아침빛처럼 싱싱해 보인다.
산책로 따라 조명이 들어오면 낮과 다른 새로운 밤의 아중호수를 볼 수 있다. 자연을 배경으로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수상데크 광장에서 버스킹하는 노랫소리가 들릴 듯하다. 아마 문화예술인의 공연도 있을 것 같다. 낮과 밤의 풍경이 다른 아중호수가 주는 위로에 감사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중호수 벚꽃길을 보고 싶다면 꽃 피는 사월이 제격이다. 제방 밑 주차장 주변으로 조성된 벚꽃길도 좋지만 동부대로 변 주차장을 추천해 주고 싶다. 어린이와 함께 아중호수를 찾았다면 주차장 입구에 호동골어린이공원이 있다. 동네 놀이터와 다른 집라인과 통나무 동굴, 징검다리가 있는 친환경 놀이터이다. 이곳 벚꽃 그늘에 아이와 함께 널뛰기하면 좋겠다. 아이와 함께 널뛰기하면서 우리네 사는 일상도 널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올라가고 내려갈 때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균형을 잘 유지해야만 오래도록 널뛰기를 할 수 있다. 우리네 살아가는 사람 관계에서 균형을 잘 유지해야 넘어지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꽃 피는 사월이면 사방에 핀 벚꽃도, 개나리며 기린봉의 진달래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다면 수화정(水和亭)을 찾길 바란다. 순환산책로 따라 걷다 보면 어차피 수화정에 이르게 될 것이다. 낮은 언덕을 오르면 수화정에서 아중호수 변 꽃산과 꽃천지를 볼 수 있다. 저물 무렵이면 꽃 빛깔 기린봉이 호수에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사람이나 자연이나 모두가 꽃 빛깔 같아서 아름답고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수화정 벤치에 앉아 호수와 산책로 벚꽃과 기린봉 꽃 빛깔에 취해 나도 모르게 손전화가 하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맛있는 것을 먹게 되면 제일 먼저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같은 경우다. 아마 순간 제일 보고픈 사람일 것이다. 벚꽃 피는 봄날에 아중호수에서 걸려 온 지인의 전화는 얼른 받기를 바란다. 나를 그리워하는 애달픈 목소리가 아중호수에 있기 때문이다.
- 위치
-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 1가 745-2 카카오맵
도심 속 자연이 주는 편안한 위로 발 닿는 모든 곳이 감상의 공간, 전주수목원
전주수목원은 주차장에 도착해 발을 내딛자마자 자연 속을 거닐게 된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대한 설렘이 사람들의 경쾌한 발걸음과 들뜬 목소리에 가득 담겨있다. 희망찬 수목원의 봄을 맞이하려는 기대감이다.
아직 만연한 봄의 싱그러움을 느끼기엔 조금 이르지만 전주수목원은 봄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봄은 꿈꾸는 계절, 가지마다 꽃을 품은 새순이 피어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꽃과 푸르름이 가득한 시기였다면 여기저기 꽃구경을 하느라 발걸음을 재촉하며 바쁘게 움직였을 테니 오히려 봄을 준비 중인 지금이 느리게 걸으며 사색하기에 좋다. 아직 겨울의 색을 온전히 벗지 못한 수목원을 천천히 거닐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꽃은 그래서 더 반갑고 소중하다.
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은 도로공사 중에 훼손된 자연을 복구하기 위해 1970년대에 만들어진 전국 유일의 도로 전문 수목원이다. 교육홍보관에는 셀프 해설을 들을 수 있는 ‘내 손안의 전주수목원’이 비치되어 있다. 휴대폰을 QR코드에 대면 ‘수목원의 사계’와 ‘랜선 산책’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전주수목원의 특징은 수목의 이야기가 스토리텔링으로 제공된다는 것. 각 식물에 대한 안내판 앞에서서 내용을 천천히 읽어보면 수목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알 수 있다. 아는게 많아지는 만큼 보이는 것도 많아지고, 그만큼 느낄 수 있는 것도 많아지니 그야말로 사색과 감상의 공간이다.
수목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장미의 뜨락이다. 장미 넝쿨을 드리운 창호문과 기와 조형물이 한옥마을을 연상시킨다. 기와를 얹은 장미의 뜨락 둥근 문 너머로 봄 기운이 들어올 것 같다. 오월이 되면 빨갛고 흰 장미가 기와 지붕을 배경으로 피어 고풍스러운 풍경이 신비롭게 펼쳐질 것이다. 달빛 기와와 어우러져 도도하게 피어난 장미는 얼마나 근사할 것인가? 멋진 곡선으로 휘어진 기와에 귀를 대고 있으니 따뜻한 햇살에 달궈져 볼이 따뜻하다. 장미 터널에서 꽃이 피어나면 연인과 가족들은 손을 잡고 꽃 터널을 지나며 이 날의 여행과 아름다움을 추억할 사진을 남길 것이다. 아직 피어나지 않은 장미 넝쿨을 보고 있으니 드는 아쉬움도 잠시, 만발한 장미 화원을 보겠다는 다음을 기약하며 더 기대하게 만드는 장소가 되었다.
장미의 뜨락 옆의 온실은 언제나 봄이다. 따뜻한 온실 안 수목들은 언제나 꽃을 피우며 푸르름을 뽐내고 있다. 온실 안 수조에서 노랗고 붉은 잉어들이 꽃잎처럼 헤엄치고 있는 모습과 수목의 조화는 정말 아름답다.
누구나 꽃 피는 시기가 있다. 꽃을 피우는 것은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꽃이 피면 수고했다고, 아직 피지 않았으면 힘내라는 마음으로 꽃 이름을 가만히 불러 주었다. 나는 내가 꽃 피울 계절을 기다린다.
봄은 아이의 발소리처럼 온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천천히 거니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겨우내 잠든 뿌리를 깨운다. 마치 ‘그만 자고 일어나! 이제 꽃을 피우는 시간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잔디광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전망 좋은 벤치에 앉아 다정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이 참 예쁘다.
동백꽃이 핀 자리에는 노란빛 선명한 수선화가 옹기종기 심어져 있다. 꽃이 진 자리는 꽃의 편지다. 동백이 지면 수선화가 피고, 또 다른 꽃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아름다운 시절을 피우며 소식을 전할 테니 말이다.
피크닉 쉼터는 수목원 중앙에서 자연 속에서 휴식을 만끽하는 장소로 주변이 온통 수풀이다. 수목원을 거닐다 곳곳에 보이는 벤치와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으니 따뜻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갑자기 새들이 날갯짓하며 날아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 계절에 나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이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릴 것인가 하는 사색에 잠겨본다. 번잡한 세상의 일들을 다 잊을 수 있는 이곳 전주수목원은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고 나무 우듬지는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있다. 전주수목원에 온 이유도 잊고 잠시 눈을 감았다. 가까이에서 아이들이 새처럼 재잘대며 웃는 소리가 하늘로 날아간다. 허공에서 소리와 소리가 씨줄과 날줄로 만나는 피크닉 쉼터에 앉아 있으니 봄볕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포근하게 감싸는 봄볕에 몸이 나른해진다. 나는 전주수목원에서 다시 만날 꽃심을 상상하며 휴일 오후를 보낸다.
다양한 세대의 추억이 공존하는 우리 모두의 기록 고즈넉한 감성으로 새단장한 덕진공원
덕진공원은 전주의 멋을 품은 곳이다. 기와로 지붕을 얹은 공원 입구의 현판에 적힌 ‘연지문’은 여기서부터 ‘연꽃의 나라’라는 의미 같다. 연지문에서 차 한 모금을 마실 거리에 시비 광장이 있다. 전북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동상과 시비가 모여 있다. 정면에 긴 다리를 꼬고 앉은 이국적인 사내의 동상은 “네 눈망울에서는 초록빛 오월 하얀 찔레꽃 냄새가 난다~”로 시작하는 시를 지은 신석정 시인이다. 일제의 창씨개명을 거부한 지조의 시인 신석정 시비를 찔레꽃 덩굴이 무성하게 에워싼다.
공원의 중심에는 연못이 있고 연못 앞에는 희고 고운 모래가 깔린 제법 넓은 공터가 있다. 연못이 내려 보이는 그늘 아래에는 공원을 사랑하는 어르신들이 앉아 있다. 노인들은 바둑을 두거나 비둘기 떼를 따라 종종거리며 걷는 아이들을 본다. 연못 앞 공터의 터줏대감은 비둘기 떼다.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비둘기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걷다가 날개가 있다는 것이 갑자기 생각난 듯 푸드덕, 날아오른다.
연화교에서 연못을 오른쪽에 두고 걸으면 고풍스러운 정자가 보이는데 연못을 끼고 앉은 정자의 이름은 바로 취향정, 연꽃 향기에 취한다는 의미다. 연꽃이 만개하는 시기였다면 한걸음 들어서자마자 연꽃 향에 취했을지도 모르겠다. 하늘로 한껏 들려진 추녀는 오랜 세월을 함께한 나뭇가지에 눈썹을 맞추고 있다. 한때 전주의 세도가들이 풍류를 즐겼다는 취향정에 오르면 노랗고 붉은 잉어가 긴 수염을 달고 수초 사이를 유유히 헤엄치는 것도 볼 수 있다. 정자 앞으로 미술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이곳에 이르면 시간이 천천히 흐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취향정이라는 이름처럼 조금씩 덕진공원의 매력에 취해가는 듯하다.
다양한 세대의 추억이 공존하는 우리 모두의 기록, 연화교한때 출렁다리라 불렀던 연화교는 연못의 가운데에 있는 인공섬을 잇는 다리였는데, 최근에 고즈넉한 감성으로 새단장을 했다. 멋스러운 돌다리로 바뀐 연화교 난간에 기대어 가만히 연못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바람결에 살랑이는 물 위로 모든 고민을 털어내고 사색에 빠지게 된다. 물에 비친 연화교와 하늘 위 구름의 모습이 마치 과거로 시간 여행을 온 느낌이다. 곡선과 직선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연화교를 걷다 보면 한옥으로 새롭게 지어진 연화정도 만날 수 있다.
연화정을 거닐며 과거의 덕진공원에 남아있는 추억과 새롭게 만들어갈 미래를 상상해 본다. 연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활짝 핀 연꽃 구경을 위해 덕진공원을 찾은 사람들은 꽃구경도 잊고 연꽃과 어우러져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연화교와 연화정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까? 과거의 연화교를 모르는 누군가가 있다면 ‘옛날에는 이랬지’하며 이야기꽃 피우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낮의 연화교가 밝은 햇살 아래 포근하고 고즈넉한 아름다움이라면 어둠이 내린 저녁의 연화교는 따스하고 감성적인 빛으로 가득하다. 다리 곳곳을 비추는 연노란빛 조명은 어두운 길 행여나 잃어버릴까 다리를 오가는 여행자의 앞 길을 은은하게 밝혀준다. 마치 달빛이 내린 길 위를 걷는 것 같다. 일렁이는 수면 위로 보이는 노란빛이 조명인지 달빛인지 모르겠다. 빛이 가득한 밤의 연화교는 오히려 낮보다 따스한 색감으로 물들어 더욱 아름답다.
숲에서 ‘맘껏’ 놀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덕진공원 정문의 반대편에는 ‘야호 생태 맘껏 숲’과 ‘맘껏 생태 하우스’가 있다. 공원 산책로에 인접해 있어 지나는 사람들도 맘껏 소리를 지르며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미소 짓는다. 이곳은 아동 친화도시인 전주시가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위해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함께 만들었다. ‘맘껏’은 유니세프 아동 친화공간에 사용되는 명칭. 맘껏 생태 숲 그늘에는 그물 해먹이 폭신한 이불처럼 펼쳐져 있다. 해먹 위에서 발을 구르면 하늘 높이 방방 뛰어 오를 것만 같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열심히 뛰어논다.
맘껏 숲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나무의 집이다. 하늘로 곧게 뻗은 히말리야 시다를 기둥 삼아 가지 사이에 앙증맞게 작은 집을 만들었다. 나무의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용기가 필요한 트리하우스’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집과 집 사이를 연결하는 그물 다리를 건너려면 정말이지 모험심이 필요할 것 같다.
맘껏 숲에서 맘껏 생태 하우스로 가는 작은 언덕을 오르면 미끄럼틀이 있고 나무 블록 쌓기와 모래 놀이를 할 수 있는 작은 놀이터가 나온다. 튜브로 된 미끄럼틀을 맘껏 타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 송글 맺힌다.
맘껏 생태 하우스 1층 창가의 다육이 화분이 앙증맞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며 잠시 휴식을 취해도 좋겠다. 아파트의 층간 소음으로 답답했다면 아이들에게 힐링이 되고 어른에게는 휴식의 공간이 되는 행복한 놀이터로 얼른 도망가자.
- 위치
- 전주시 덕진구 권삼득로 390 카카오맵
- 운영시간
- 24시간 개장 / 연중무휴
자연과 예술, 휴식 속에서 찾는 여유 여행자를 맞이하는 반가운 길, 전주역 첫 마중길
첫 마중길은 전주역에 도착한 방문객이 처음 만나는 길로 여행자를 맞이하는 반가운 길이다. 손님을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첫 마중길이라 이름 지었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라는 시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라고 했다. 한 사람의 여행자가 우리가 몰랐던 전주를 발견하면 도시는 그만큼 풍요롭고 다채로워진다. 길을 단장하며 심고 가꾼 이팝나무의 꽃말 ‘영원한 사랑’처럼 함께 여행 온 사람과 손가락 깍지를 끼고 걸으며 영원히 기억될 한편의 영화를 찍어도 좋으리라.
여행 가방을 끌며 400여 그루의 느티나무와 이팝나무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면 영화의 한 장면의 도입부처럼 설렌다. 이 길의 작은 소품 하나하나엔 지역 예술가들의 따뜻한 마음이 스며있다. 첫 마중길에 처음 방문한 사람은 귀하게 대접받은 설렘을, 떠나는 사람은 아쉬움에 손 흔드는 부모님 같은 포근함을 간직하게 된다. 생태문화거리로 조성된 첫 마중길은 가로수 길을 따라 산책하기에도 좋고 여행자 도서관 등 문화를 즐기기에도 좋은 곳이다.
첫 마중길을 걷다 보면 빨간 컨테이너가 눈길을 끈다. 여행자 라운지와 아트북 갤러리로 구성된 첫 마중길 여행자 도서관이다. 2층 전망대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에 오르면 이팝나무 가지가 눈맞춤을 한다. 여행자 도서관은 강렬한 외양만큼이나 내부의 전시 디스플레이도 매력 만점이다.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팝업북과 동심을 자극하는 그림책, 구하기 어려운 애니메이션 북까지 다양한 취향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조선시대 출판문화 중심도시였던 전주의 정체성을 담았다.
여행자 도서관은 상상력이 가득한 공간으로 내용물이 불쑥 튀어나오는 마블의 팝업북처럼 여행지에서의 감동도 느닷없이 온다. 세계의 여행지 코너는 유명 도시들이 손안에 펼쳐진다.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또 하나의 플랫폼인 셈이다.
통유리로 된 창가에 앉아 계절처럼 바삐 지나가는 사람을 일없이 보는 것도 여행자의 특권이다. 커다란 통창 앞의 의자는 편안하고 쿠션은 푹신하여 집에서 쉬는 것 같은 안락함을 준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된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도서관이다.
세상의 길은 가 본 길과 가지 않은 길로 나뉜다.첫 마중길은 만났다 갈라지고 갈라졌다 다시 만난다. 왕복 10차선 길을 6차선으로 줄이고 지그재그로 길을 냈다. 직선으로 쭉 뻗은 길이 곡선을 만나며 자동차의 속도는 줄어들고 공간이 생겨났다. 분명 장난기가 많을 것 같은 건축가들은 새로 생긴 공간에 나무를 심고 여행자를 위한 공간으로 꾸몄다. 운전자들은 지그재그로 난 길을 지나가다 계절을 읽어내는 이팝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여행자들을 보며 문득 삶을 돌아보는 여유를 갖는다. 기차 시간을 맞추려고 빈번하게 일어나던 교통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어든 것은 덤이다.
첫 마중길에서는 누구나 여행자의 마음이 된다. 컬러링 공간에는 컬러링 엽서와 마카, 파스텔 색상의 색연필이 준비되어 있다. 스케치된 엽서에 색칠을 하며 힐링도 하고 자신만의 기념품을 가져갈 수 있다. 아트북 갤러리는 절판본, 일러스트, 브랜드 잡지 등 매력적인 콘텐츠가 작은 공간에 코너별로 나눠져 있다. 오전 아홉 시에서 저녁 아홉 시까지의 운영시간이 아쉬울 정도다.
산책을 나온 전주 시민들도 첫 마중길 그네에 앉아 도심 안에서 여유를 만끽한다. 맑은 날에는 연초록 잎들이 햇살에 반짝이고, 비가 오면 유리창에 흘러가는 빗물의 아련함도 좋다. 봄에는 이팝나무가 하얀 눈꽃 향기로 피워내고, 가을엔 노랗게 물든 느티나무 잎이 바람에 쓸리며 운치 있는 풍경을 그려낸다. 운이 좋은 날에는 중앙 광장에서 열리는 버스킹이나 지역 예술가들이 참가하는 거리 전시도 볼 수 있다.
전주역에서 첫 마중 길을 따라 여행자 도서관 쪽으로 가다 보면 첫 마중길 갤러리를 만나게 된다. 흰 컨테이너 한 동으로 이뤄진 이 아담한 갤러리는 원룸 미술관이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철근 콘크리트를 주제로 한 작품이 간단한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여행은 직관과 감상의 체험이라고 하지 않던가. 가로등이 불을 밝히는 저녁 무렵에 나와 마주한 작품은 뭔가 말하려는 듯 보였다.
첫 마중 길을 나오며 이름처럼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길을 만든 전주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생각했다. 루카치는 ‘길이 시작되자 여행이 끝났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첫 마중길에서 나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 위치
-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3가 746 카카오맵
- 운영시간
- [여행자도서관] 09:00~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