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오르면, 전주는 한 왕의 꿈이 피어난 자리이다.
통일신라의 힘이 약해지고 민심이 흩어지던 9세기 말, 지방 곳곳에서 새로운 질서와 세상을 꿈꾸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 격랑의 한가운데, 새로운 왕국을 꿈꾸던 견훤(甄萱)이 있었다.
그는 통일신라 말의 무장 출신 인물로, 완산주(지금의 전주)를 근거지로 삼아 900년, 후백제(後百濟)를 세웠다.
신라의 쇠퇴 속에서 백제의 옛 땅에서 새로운 왕국을 세우고자 한 뜻,
그리고 스스로의 세력을 일으킨 자주적 기운이 이곳 전주에서 비롯되었다.
TIP 전주성(완산성)은 조선시대 전주읍성보다 더 넓은 범위의 도성으로, 지금의 완산구 일대가 그 중심이었다.
완산, 후백제의 도읍이 되다.
견훤이 나라의 도읍으로 삼은 곳은 ‘완산(完山)’, 지금의 전주였다. 예로부터 전주는 산과 들이 맞닿아 있는 고장으로, 북쪽의 건지산과 남쪽의 완산칠봉이 감싸고, 그 사이로 전주천이 흐른다. 이 지형은 외세의 침입을 막고 풍요로운 평야를 거느리기에 알맞은 천혜의 입지였다.
위에 새로운 나라를 세워 백제의 옛 땅을 되찾고자 했다. 900년, 그는 이곳 완산주를 수도로 정하고 국호를 ‘후백제(後百濟)’라 하였다. 이때부터 전주는 한 나라의 정치와 문화가 모여드는 ‘왕도(王都)’, 즉 국가의 중심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게 된다.
후백제는 약 40여 년 동안 호남 일대를 중심으로 강성한 세력을 유지했다. 견훤은 신라의 수도 경주까지 공격할 정도로 기세를 떨쳤으며, 후삼국의 패권을 놓고 고려와 치열하게 맞섰다. 비록 최후에는 역사의 흐름에 밀려 사라졌지만, 그가 완산에 세운 도읍은 훗날 ‘전주’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천년 왕도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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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이 살았던 후백제의 역사가 깃든 동고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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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城(전주성)이라 새겨진 기와 조각
후백제의 길을 걷다.
동고산성에서 전주천까지 이어지는 일곱 길을 따라가면, 천년 전 견훤이 세운 왕도의 자취가 한 걸음마다 스며 있다. 세월이 흘러도 완산의 산과 물은 그가 꿈꾸던 나라의 숨결을 고요히 품고, 그 위에 오늘의 전주가 다시 피어났다. 이 길을 걷는 여행자는 천년을 넘어 이어진 왕도의 시간을 만난다. 견훤이 바라보았을 하늘과 들판, 그리고 전주의 바람 속에서 후백제의 기운은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천년 왕도의 길, 후백제의 길에서 전주의 시작을 다시 만난다.
1 후백제 왕도의 성곽, 동고산성(東固山城)
전주 완산구 동완산동에 자리한 동고산성은 통일신라 말기에 축조되어 견훤이 수도 완산주를 지키기 위해 후백제 시기에 수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 전체를 감싸는 둘레 3km의 석축 성곽은 왕궁이 있던 전주성의 외곽을 지키는 방어 요새로 기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고산성에 오르면 견훤이 다스렸던 완산의 평야와 천년 왕도의 지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실제로 발굴조사에서는 ‘全州城(전주성)’이라 새겨진 기와 조각(국립전주박물관 소장)과 후백제 시대의 토기, 건물지의 흔적들을 통해 후삼국(後三國) 중 37년 간 강력한 나라를 이루었던 후백제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으며 이 유물들은 전주가 실제로 후백제의 수도가 전주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 가운데 하나이다.
2 왕이 기원한 사찰, 동고사(東固寺)
동고산성 북쪽 자락에 위치한 동고사는 전해지기로는 견훤이 나라의 안녕을 빌며 세웠다고 하나, 명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후백제 왕도의 불교적 전통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여겨진다. 동고사는 후백제의 왕도 전주가 종교와 정신문화의 터전이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고즈넉한 절터와 오래된 석탑, 그리고 절집을 둘러싼 숲길은 그가 걸었던 왕도의 숨결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절집 뒤편의 오래된 석탑과 전각들은 세월의 무게를 품고 있으며, 조용한 숲길을 따라 오르면 왕도의 신령한 기운이 감돌 듯하다.
3 견훤의 근심을 씻은 물가, 낙수정(落水亭)
동고사 아래 자리했던 낙수정은 견훤이 나라를 세운 뒤에도 민심과 권력의 갈등 속에서 이곳에 올라 마음을 달랬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맑은 샘물이 바위틈으로 떨어져 이름 붙은 이 정자는 왕의 근심을 씻어내던 물가로 오랫동안 기억되었다. 지금은 정자 건물은 사라지고, 낙수정마을’이라는 지명만 남아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청동 범종(전 낙수정 동종, 국립전주박물관 소장)은 낙수정이 천년 전부터 이 지역의 역사 속에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사라진 정자의 자리는 이제 마을과 골목길의 이름으로 남아, 후백제 왕도의 기억이 생활 속에 이어지고 있다.

- 출처 : 국립전주박물관

4 왕도를 품은 일곱 봉우리, 완산칠봉(完山七峰)
전주 도심 남쪽을 병풍처럼 감싸는 완산칠봉은 전해지기로는 견훤이 도읍을 정할 때 완산칠봉을 수도의 경계로 삼았다고 한다.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완산의 지세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봉우리로 여겨진다. 칠봉(七峰)은 각각의 산세가 부드럽게 연결되어 완산의 형세를 이루며, ‘왕의 기운이 머무는 곳’으로 여겨졌다. 지형적으로 보면 동고산성과 함께 전주성의 방어선을 이루었고, 도성의 배후를 보호하는 천연의 요새 역할을 했다. 지금은 시민 산책로로 조성되어, 전주의 원형 지세와 천년 왕도의 공간적 범위를 느낄 수 있는 명소이다.
5 전설로 남은 왕도의 풍수, 덕진연못
전주 도심 북쪽에 자리한 덕진연못은 오늘날 덕진공원의 중심을 이루는 아름다운 수변 공간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견훤이 왕도 전주의 북쪽 기운을 다스리기 위해 늪을 파서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는 수도의 풍수를 안정시키려는 왕의 뜻이 담긴 전설로, 후백제 왕도 전주의 지형과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역사 기록이나 유물로 확인되지는 않지만, 덕진연못은 오랜 세월 전주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든 공간이다. 매년 단오절이면 시민들이 물맞이 행사를 열고, 여름이면 연꽃이 가득 피어나 천년 전 전설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견훤의 시대를 품은 이야기가 오늘의 연못 위로 잔잔히 번져,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전주의 또 다른 왕도 이야기로 남아 있다.
6 왕도의 물길, 전주천(全州川)
전주천은 완산의 남쪽을 감싸며 이어지는 하천으로, 후백제 시대에는 도성의 중심을 관통하며 왕도와 백성을 잇는 생명의 물줄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전주천은 산책로와 수변공원으로 정비되어, 천년 전 왕도의 공간 구조를 따라 사람들의 길이 되었다. 동고산성에서 발원한 물이 낙수정과 도심을 지나 이 하천에 닿듯, 그 물길은 전주의 시간과 역사를 함께 품고 있다. 오늘날 전주천은 천년의 기억을 머금은 문화의 길로 다시 태어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전주의 상징이 되었다. 천년을 흘러온 물길이 멈추지 않듯, 전주의 역사는 지금도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