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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감영

전라감영 사진

公演역사문화

전라도 일도를 총괄하는 지방통치관서
전라감영은 전라도 일도를 총괄하는 지방통치관서로 조선왕조 500여년 내내 전주에 자리했다. 조선시대 전라도를 지금의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제주도까지 포함한 지역이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전라감영 자리에 전라북도청이 들어섰다. 2005년 전북도청이 신도심으로 이전하면서 전라감영 복원 논의가 본격화 되었다. 호남의 으뜸도시로서 전주의 역사성을 회복하고, 원도심의 활성화를 위한 것이다. 오랜 논의 끝에, 2015년 구도청사 철거를 시작으로 감영 복원이 시작되었고, 2020년 10월에 1단계 사업을 완료하고 문을 열었다.

관람시간 안내

  • 하절기3월 1일 ~ 10월 31일 ( 09:00~21:00 )
  • 동절기11월 1일 ~ 익년 2월 28일 ( 09:00~18:00 ) ※ 개관을 기념하여 2020년 11월 1일~2021년 2월 28일까지는 21:00까지 운영 (코로나 19 또는 기상조건에 따라 운영시간이 단축될 수 있음)

해설투어 안내

해설투어
구분 매일 4회
정기 해설투어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4시 오후 7시
전라감영 사진
  • 선화당선화당은 전라감사의 집무처이다. 선화당이라는 당호는 ‘왕명을 받들어 교화를 펼친다’는 ‘승류선화(承流宣化)’에서 나온 말이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그 이듬해 1598년 전라감사 황신(黃愼)이 중건하였으며, 1771년에 전라감사 윤동승(尹東昇)이 개건하였다. 이후 1792년(정조 16)에 화재로 소실되어 전라감사 정민시(鄭民始)가 다시 중건하였다. 선화당은 광복후까지도 남아 있었으나 한국전쟁 중 1951년 경찰청 무기고로 쓰이던 도청 문서고에서 로케트탄이 폭발하여 도청 본관과 함께 소실되었다. 선화당은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로 약 78평에 달하는 큰 건물이며, 전주부성내에서 객사 다음으로 컸다.
  • 연신당연신당은 전라감사의 처소이다. 1688년(숙종 14)에 전라감사 이유(李濡)가 창건하였다. 연신당이라는 이름은 『논어』「술이편」에 ‘공자께서 집에서 쉬고 계실 때는, 마음이 온화하고 너그럽고 즐거우신 듯 보였다(子之燕居 申申如也 夭夭如也)’에서 나온 것이다. 감사가 편히 쉬는 처소임을 의미한다. 경상감영은 징청각(澄淸閣)이라고 하였다.
전라감영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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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화나무회화나무는 흔히 ‘선비나무’, ‘학자수’라고 부른다. 나무 가지가 선비의 기상처럼 거침없이 자유롭게 뻗어나기 때문이다. 이 회화나무는 수명이 250 여년이 된 나무로 현존하는 전라감영의 유일한 흔적이다. 구 도청사 건물 철거 전에 회화나무가 의회동 건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 관풍각관풍각은 선화당에 이어 감사가 정무를 처리하는 제2의 정청이며, 감사가 쉬기도 하고 연회의 장소로도 사용했다. 관풍각 이라는 이름은 감사의 직무인 ‘풍속과 민정을 살핀다’는 ‘관풍찰속(觀風察俗)’에서 유래하였다. 선화당과 관풍각 당호는 감사의 직무를 상징적이고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전라감영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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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아와 내아행랑내아는 전라감사 가족들이 거쳐하는 안채로 선화당 북쪽에 위치하였다.
  • 19세기 「완산부지도」에 내아가 ‘ㄷ’자형 건물로 그려져 있다. 발굴조사에서 3동의 건물이 중첩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3차례 개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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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석과 폐석가석은 섬돌 아래 왼쪽(동편)에 설치하여 죄인들로 하여금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표석이고, 폐석은 오른쪽(서편)에 설치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억울함을 하소연 하게 하는 신문고 같은 표석이다. 가석과 폐석은 감영의 사법적 기능을 보여주는 것으로, 감사로 하여금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여 깨우치게 하고 재판을 공정히 하여 억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법을 다루는 형조의 섬돌 아래에도 가석과 폐석이 있다. 『주례(周禮)』에 따르면, 가석은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돌로 잘못을 저지른 자들이 이를 보고 뉘우치고, 폐석은 붉은 돌로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이 이 돌 옆에 서 있으면 억울한 일을 해결해 준다고 하였다.
측우기와 측우대측우기는 비가 내린 양을 측정하는 기구로 세종 때 처음 만들었다.
  • 각 도의 감영과 군현에 측우기를 설치하여 강우량을 재고 농사에 활용하였다. 이 측우기는 충청감영에서 사용했던 측우기를 재현한 것이다. 측우기를 받치고 있는 측우대는 경상감영의 것을 본떠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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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라감영 선정비선정비란 선정을 베푼 관리들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그렇지만 조선말에는 선정비들이 으레 세워졌고 억지로 세워지기도 하였다. 조선말에는 전라감영 건너편에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가 다가공원 쪽으로 옮겨졌으며, 2020년 감영을 복원하면서 감영 경내로 이전하였다. 관찰사 18기, 판관 5기, 중영장ㆍ별장ㆍ영의정ㆍ암행어사 각 1기로 총 27기의 선정비가 있다.
  • 우물1928년 및 1937년 일제강점기 도청사 도면에 표기된 우물로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우물의 평면은 원형이며, 20~30cm 내외의 석재로 쌓아올렸다. 우물의 규모는 직경 150cm 내외로 확인되었다.
전라감영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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